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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떨림과 울림>

st.alloy 2019. 12. 28. 17:19

<떨림과 울림> - 김상욱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지대넓얕>의 저자 채사장님이 <여섯 계단> 이라는 책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책들' 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읽어야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거라고.
과학이라는 분야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에게는 절대로 편하지 않은,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래서 과학으로부터 도망치고자 문과로 진로를 택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처음으로, 어쩌면 과학이 그렇게 다른 세계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된 적이 있다. 스무살 때였는데, 물리학을 전공하는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우리가 서로 다른 단어들을 선택했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대화의 주요 주제는 인간의 운명, 삶의 이유 따위의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까지 나는 철학만이 그런 주제들을 다룰 수 있는 분야라고 착각 아닌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잊고 있었던 지난 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그래서 책 내용이 참 어렵기도 하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김상욱 님의 지식과 통찰력이 다양한 형태들의 떨림을 통해 나에게 한 권의 책으로 왔고, 울림을 주어서 감사하다.
나의 울림은 노트북 키보드 아래에서 흐르는 전류가 되었고, 전류는 화면 속의 글로 바뀌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또 새로운 울림으로 전해지기를.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키워드는 아래와 같은 4개이다. 알듯말듯한 느낌에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 개념들이 책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여전히 완전하게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떨림 : 물체가 작은 폭으로 빠르게 반복하여 흔들림
울림 : 예술 표현 따위의 외적 자극이 마음에 닿아 감동을 일으키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연: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필연 :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일.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우주는 떨림이다.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우주는 소리, 빛, 전자기장 등 볼 수 없는 떨림과 나뭇잎의 떨림, 눈동자의 떨림 같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우주는 (인과관계에 의한, 또는 확률론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이 법칙에는 아무런 의도나 목적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면서 살아간다. 
(블로그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나는 의미를 만들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이라는 건 확실하다. )

 

<읽으면서 든 생각,의문점>

  • 시간이 흐르는 것은 필연으로 보인다. 우주의 엔트로피(경우의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미래나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 필연이, 우연(그 다양한 경우의 수 중에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는지)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일까?
  • 사진/영상에서의 색온도 (빨강색은 따뜻한 색, 파랑색은 추운 색)는 실제로 빛의 색깔이 가지는 색온도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빛의 '떨림'→ 눈에서의 공명 → 뇌에서의 인식, '울림')
  • "인류의 근현대사는 인간 평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투쟁의 역사" :
    (1) '평등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2) 이전의 불평등한 상태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불평등함이 생겨나서 결국에는 세상의 '평등함' 정도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을까?
  • 인간의 유전자는 거의 동일한데, 왜 인간마다 가지는 감정, 미적감각, 도덕성 등에는 차이가 있는걸까?
    (나머지 1% 유전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 인간 개개인의 삶에도 '운명' 이 있을까? 오늘 일어나는 나의 하루는 필연일까?
    삶이란 정해진 결말을 향해서 가고 있지만 그 과정만이 나의 선택으로 바뀌는 것인지, 아니면 결말까지도 나의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아니면 나의 선택이라고 믿는 부분조차 사실은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일까.
  •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 / 영화 <컨택트> "어떤 대화가 되었든 헵타포드는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비록 결과가 정해져 있더라도, 그 결과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있어야만 한다.
  •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닥터스트레인지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타노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결말이 딱 하나뿐이라고 이야기했었다. 아이언맨의 죽음이 이 결말을 선택하기로 하고,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라고 본다면, (우주의 법칙에는 없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의미라고 해야할까. 
  • 1920년대, 물리학에 '이중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하였고 예술계에서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무의식을 예술로 표현하는 '초현실주의'운동이 시작되었다. 다양한 분야 (과학, 예술, 심리학) 에서 상호 영향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 시작점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제공하는 물리학이라고 봐야할까?
  • 무선통신이라는 '떨림'의 발견으로, 한 인간의 '떨림'이 '울림'을 줄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미래에는 어디까지 더 확장이 가능해질까? 우주, 은하를 넘어설 수도 있을까?

 

한줄평 : 읽고 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지만, 세상을 보는 새로운 태도와 관점을 가지게 될 수도 있는 책.

재미(얼마나 재미가 있는가) ★★★
유용성(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
난이도(얼마나 쉽게 읽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