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제작소
서평 |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본문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 허새로미
한국어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영어 수업
나는 외국어를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나의 세계가 더 확장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배우기 시작했으며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 온 외국어인 영어는 언제나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따라붙기는 하지만, 학습의 영역이라기보다 취미의 영역으로 느낄 때가 더 많았다.
영어로 읽고, 듣고, 말할 줄 알면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이점들이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구글링을 통해 한국어로 찾을 수 없는 정보를 이해할 수 있다거나,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갔을 때 좀 더 편하다거나 하는?
하지만 그런 이유들과 별개로 내가 영어를 좋아하는 이유가 더 있는 것 같다고 늘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어를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스스로를 'Bilingual'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영어라는 언어에서 대체 무엇을 발견했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영어가 나에게 새로운 (혹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자아를 부여해주기 때문에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내가 신중한 성격을 가져서 더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대화가 꽤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 때가 많다.
특히나 잘 모르는 사이의 사람들과 만나면, 호칭을 어떻게 해야하나 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사용하는 단어들이나 어투가 혹여나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싶어서 긴장될 때도 많다.
반대로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말을 했을까? 무슨 의도지?
보통은 그저 속으로만 생각을 하고 참지만, 가끔은 왜 '그렇게' 말을 하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답을 들어보면, 그저 서로가 인식하는 말에 대한 느낌이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니야"와 "아니거든"의 차이가 뭐냐고. ... 둘 다 똑같은 no인데 하나는 그냥 no이고 하나는 경고를 담은 no라고? 그러면 그걸 설명한 나는 그 둘의 차이를 인식하고 사용해왔던가? ... 어느 교과서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것들을 우리는 모두 사회적으로 배워서 암묵적으로 합의해 조화롭게 소통하고 있는 걸까?
영어로 대화할 때는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잘 없는 것 같다. 한국어로 대화를 할 때도, 어떤 어미를 썼느냐 따위를 놓고 발화 의도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는 상황은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그 대신 대화의 본질적인 내용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었으면 싶다.
그래서 말을 최대한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조금 비효율적인 것 같아도 오해의 소지가 가급적 없도록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편이 더 좋은 것일까 고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만큼 나의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언어는 없을 것 같기는 하다. 모국어라서 더 편하다는 사실과 더불어서, 더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언어일 때도 있기에. 그래서 영어라는 언어는 '취미'의 영역으로만 남겨두고 싶다.
한줄평 : 책을 읽으며 나의 언어습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재미(얼마나 재미가 있는가) ★★★★
유용성(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
난이도(얼마나 쉽게 읽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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